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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야? 심장도 떼어 준다 그래
심장도 떼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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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제가 저지른 엉뚱한 짓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합리성을 내팽개치는 스릴, 순간순간의 감정만 따르는 단순함, 전부 부숴 버리고 싶은 오싹한 충동. 그저 당장의 욕망에 충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모순이 또 있을까요. 오로지 합리성을 따라 미래를 내다보고 계획대로 나아가겠다는 태도와 전부 때려치우고 지금 이 순간만 살아가겠다는 태도가 동시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양극단의 태도 사이에서 저는 젊은 시절에 자신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정리가 되면 부수고, 부수면 불안해서 괴로워하고, 다시 합리적으로 살려고 하지만 또다시 전부 내던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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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가 미웠던 때가 많았다 죽이고 싶은 날은 더욱 많았고
기회를 줄게 열이 내리고 나면 누가 네 친구인지 기억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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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품은 마치 필요한 순간에 와 주기로 약속되었던 것처럼 나타난다
우리는 모두 평생 닿을 일 없이 각자의 궤도를 떠도는 별들이다. 별과 별 사이 수억 광년의 거리. 속삭이듯 말해서는 평생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온몸으로 춤을 춘다. 그 별이 당신에게는 아직 판독 불가의 전파에 불과하겠지만 언젠가는 당신의 안테나에 닿기를 바라며,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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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부터 떼어 낸 인물을 어딘가에 계속 두고 오는 것
만나면 무슨 이야기 하고 싶어요?
“돌아왔구나, 안녕?” 영화에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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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욕먹고 힘없어 보이는 말일지언정 말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이해받으려면 진술하라. 누구나 이해받기 위해 모두가 아무 말이나 꺼낼 수 있고 그래서 세상은 우연의 법칙으로 변주된 차이와 반복으로 점철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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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 안에 봉인되는 말들
공란으로만 남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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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잠을 청하듯 조용해졌지만
어디선가 눈을 뜬 채 다시 기회를 노리고 있을 수 있다 누가 새로운 위협에 대한 메시지를 경고하고 있는가 …… 믿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과 짧은 순간만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다 …… 그 시간과 장소에 오직 한 번만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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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우를 좋아해서 반납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여기 카메라 중고로도 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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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는 관객이 되기를 원할까?
자기의 바깥에 있는 천재성에 의지해야 한다면? 그게 자신을 관객으로 만든다면? 그걸 너무도 원하는 한편 전혀 원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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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잠이 안 와서
니가 소설을 쓴다고 하니까, 가만히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아이디어가 딱 떠오르는 거야 …… 뭐 사랑도 있겠고, 인간 고유의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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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해석 이딴 거 다 집어치우고 평생 자기 뿌리가 어딘지 모르고 어딜 가든 이방인처럼 사는 삶을 대체 니들 중 누가 아는데? 그 고통을 니들이 알아? 말이야 쉽지. ‘어 와사비 올라갔네? 이럴 줄 알았음 ㅋ’ 병신들. 너넨 평생 그렇게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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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과 은폐의 관성은 끊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축축하고 시커먼 것들을 타인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널고 싶은 욕망은 고해 성사의 그것과 닮아 있다. 결국 자신이 감내해야 할 것들의 무게를 줄여 보려는 알량한 자기 위로에 불과한 것이다. 아무도 너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모티베이션을 찾지 못하는 걸 계속할 필요는 없다. 외부적 요인보다 스스로의 의무에 노예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해를 보지 않으면 잠이 안 온다. 이제는 해를 보아도 잠이 안 온다. 잠을 객체화하고 원할수록 잠은 도망간다. 갈증을 느끼는 대상은 언제나 비누칠한 것마냥 손에서 미끈덩하고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라는 영화가 있다. 순 거짓말이다. 여유라는 건 언제 어느 때가 되어도 부족하기 마련인 것으로 절대적인 질량을 가지지 못한 상대적인 가치라고 생각한다. ‘탕’하고 방아쇠가 당겨져 발사된 기분이 든다. 올해도 정신을 차려 보면 십이월일 것이다. 나에게 봄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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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자꾸 아프다 나는 조금 걱정이 된다
사람들은 의외로, 혹은 너무 당연하게도 너에게 관심이 없다. 네가 뭘 하든 그들은 자신의 비대함에 꽂혀 있을 뿐이고,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똑똑하지도 않다. 무얼 위해 불면을, 고립을, 박해와 오해를 자처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물질적 보상이나 명예의 획득 따위의 일종의 상승 욕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명료한 목적의식을 부여할 수 없을 만큼 이미 뼈저리게 삶이다. 흐려지지 않았으면 한다. 사람은 완전히 혼자가 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SNS로 인해 외계와 개인의 경계가 무너져, 작금의 사람들은 언제나 군중들 사이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들은 잠을 잘 때조차 완전한 혼자가 되는 경험을 하기 어렵게 되었다. 문제는 날이 하루하루 쌓일수록 생은 점점 더 버거워진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살아 있음’의 상태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으나 다시금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를 찾게 된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바란 건 즐겁고, 평온하며 건강한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세계가 커다란 만큼 공백 없이 꽉꽉 들어찬 슬픔들에, 나는 이불을 정수리 끝까지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결국 누구와도 제대로 인사를 나눈 적이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