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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는 관객이 되기를 원할까?
자기의 바깥에 있는 천재성에 의지해야 한다면? 그게 자신을 관객으로 만든다면? 그걸 너무도 원하는 한편 전혀 원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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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잠이 안 와서
니가 소설을 쓴다고 하니까, 가만히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아이디어가 딱 떠오르는 거야 …… 뭐 사랑도 있겠고, 인간 고유의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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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해석 이딴 거 다 집어치우고 평생 자기 뿌리가 어딘지 모르고 어딜 가든 이방인처럼 사는 삶을 대체 니들 중 누가 아는데? 그 고통을 니들이 알아? 말이야 쉽지. ‘어 와사비 올라갔네? 이럴 줄 알았음 ㅋ’ 병신들. 너넨 평생 그렇게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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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과 은폐의 관성은 끊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축축하고 시커먼 것들을 타인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널고 싶은 욕망은 고해 성사의 그것과 닮아 있다. 결국 자신이 감내해야 할 것들의 무게를 줄여 보려는 알량한 자기 위로에 불과한 것이다. 아무도 너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모티베이션을 찾지 못하는 걸 계속할 필요는 없다. 외부적 요인보다 스스로의 의무에 노예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해를 보지 않으면 잠이 안 온다. 이제는 해를 보아도 잠이 안 온다. 잠을 객체화하고 원할수록 잠은 도망간다. 갈증을 느끼는 대상은 언제나 비누칠한 것마냥 손에서 미끈덩하고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라는 영화가 있다. 순 거짓말이다. 여유라는 건 언제 어느 때가 되어도 부족하기 마련인 것으로 절대적인 질량을 가지지 못한 상대적인 가치라고 생각한다. ‘탕’하고 방아쇠가 당겨져 발사된 기분이 든다. 올해도 정신을 차려 보면 십이월일 것이다. 나에게 봄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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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자꾸 아프다 나는 조금 걱정이 된다
사람들은 의외로, 혹은 너무 당연하게도 너에게 관심이 없다. 네가 뭘 하든 그들은 자신의 비대함에 꽂혀 있을 뿐이고,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똑똑하지도 않다. 무얼 위해 불면을, 고립을, 박해와 오해를 자처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물질적 보상이나 명예의 획득 따위의 일종의 상승 욕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명료한 목적의식을 부여할 수 없을 만큼 이미 뼈저리게 삶이다. 흐려지지 않았으면 한다. 사람은 완전히 혼자가 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SNS로 인해 외계와 개인의 경계가 무너져, 작금의 사람들은 언제나 군중들 사이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들은 잠을 잘 때조차 완전한 혼자가 되는 경험을 하기 어렵게 되었다. 문제는 날이 하루하루 쌓일수록 생은 점점 더 버거워진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살아 있음’의 상태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으나 다시금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를 찾게 된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바란 건 즐겁고, 평온하며 건강한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세계가 커다란 만큼 공백 없이 꽉꽉 들어찬 슬픔들에, 나는 이불을 정수리 끝까지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결국 누구와도 제대로 인사를 나눈 적이 없었던 것이다.
